이야기/글모음

흐린 날에는

평창강 2005. 8. 24. 20:54


너무 맑은 날 속으로만 걸어왔던가..
습기를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여..

썩기도 전에
이 악취는 어디서 오는지,
바람에 나를 널어 말리지 않고는
좀더 가벼워지지 않고는
그 습한 방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바람은 칼날처럼 깊숙이,
꽂힐 때보다 빠져나갈 때 고통은 느껴졌다.
나뭇잎들은 떨어져나가지 않을 만큼만 바람에 몸을 뒤튼다.
저렇게 매달려서, 견디어야 하나 ..

구름장 터진 사이로 잠시 드는 햇살.
그러나,
아,
나는 눈부셔 바라볼 수 없다.

큰 빛을 보아버린 두 눈은
그 빛에 멀어서 더듬거려야 하고
너무 맑게만 살아온 삶은
흐린 날 속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그래야 맞다,
나부끼다 못해
서로 뒤엉켜 찢겨지고 있는
저 잎새의 날들을 넘어야 한다.


by 나 희 덕 - 흐린날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