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글모음
어느 샐러리맨의 비애 / 고은영
평창강
2006. 5. 24. 00:12
어느 샐러리맨의 비애 / 고은영
그는 절대로 정의를 논하지 않는다
초라한 늙은 어깨에 온 힘을
싣고
깨알 같은 글씨를 써내려가는 오른손과
365일 무거운 머리를
왼손으로 괘고 있어야 하기에
마치 시험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부정적인 커닝처럼 도심의 어둠은
불황을 모르는 불빛에 노출되어
그가 괘고 있는 턱에, 그가
쓰는 글씨마다
부정한 날개가 돋아나는지도 모른다
번쩍번쩍
자주 지나가는 바람과
가끔 지나는 새들이 배설하는
분진을
그는 어떠한 저항도 없이 받아 내는 일에
낮과 밤을 안식도 없이 길고 지루하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기에
그는
차라리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인간성은
그의 죽은 혼에 잠식된
양심의 옷도
두려워하지 않는
지겨운 오만에 차있다
바람의 등걸 위로 피어나는
도심의 부정한 날개에 피는 회심의 미소
도심은 휘황한
불빛에 젖어 있다
그래도 그는, 도심의 비열한 거리를
벗어나는 일을 꿈꾸지 않는다
도심의 한복판에서 먹이를 찾는
비둘기들을 그는 증오한다
기형으로 태어난 이 시대의
천덕꾸러기 비둘기들도
그의 발밑에서 따뜻한 정에 목말라
굶주린
배를 채울 꿈은 애당초 꿈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