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글모음

향수

평창강 2006. 1. 2. 09:15

 

        

      향수  

       

      정지용 시 / 이동원 , 박인수 노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시인의 흉상과 생가(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사진 출처 : 한국관광공사>